탁월한 것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고,
지속하는 것이 탁월한 것이다.

이수민 연구소장/대표 (SM&J PARTNERS)

제목이 생뚱맞다고 느끼는가? 그럼 지금부터 얘기할 나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은 없는지.

이전 직장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수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만든 컨설팅 보고서와 실행계획(Action Plan)을 볼 기회가 많았다. 컨설팅 회사들이 그들의 내공을 한껏 뽐내며 만든 작품(?)이다 보니 고객분석부터 평가까지 구조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완벽했던 소위 ‘탁월한’ 계획이 담긴 보고서로,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왔다. 세상엔 왜 그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많은 것인지.

그런데 그렇게 탁월하다고 평가받아 조직의 명운이나 성장의 필수조건으로써 수 많은 찬사와 박수를 받던 실행 로드맵들이 실제로는 조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왜일까? 시각을 조직에서 개인으로 바꿔 보아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계기를 통해 자기변화 계획들을 탁월(?)하게 작성하고 뿌듯함을 느끼지만, 그 계획들의 대부분은 지속되지 못하고 “난 역시 안돼”라는 학습된 무력감이나 “시간, 돈, 에너지가 좀 더 있었더라면……” 등 자기합리화의 덫에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한 경험을 누구나 한 두 번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한 두 번 이상이겠지만 ^^

변화관리에 있어 ‘탁월함’이란 그 시작 시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목표가 달성되는 시점에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나의 경험으로는 크고 화려하게 대단위로 진행한 변화관리 계획들이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만큼 조직변화를 성공적으로 달성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작고 사소하여 다소 ‘없어 보이기도’ 한 계획들이 조금씩 실행하고 확산하는 과정에서 조직이나 개인들의 실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왜 변화관리를 할 때 변화 대상(target)은 작은 것부터 그리고 전개방식은 점진적으로 확산(diffusion)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진화의학에 소개된 인간의 속성에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인가?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인가?
MBA 과정 중에 인연을 맺었던 분이 지은 책 (‘이미 넌, 위대한 생존자’ / 권용철 지음)에는 이 부분에 관해 아래와 같이 재미있는 사례가 있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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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가 원래 작은 덩치에 겁도 많고 약한 존재였을까? 원래 다람쥐는 대단히 용감하고 사납고 먹이 사냥도 잘하는 생명체였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에는 먹이경쟁에서 지지 않는 용감한 유전자를 가진 다람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반면 주류 다람쥐에 비해 덩치가 작고, 소심하고, 용기도 없어서 동료들과 당당히 경쟁하지 못하며 먹이 사냥하는 ‘겁쟁이’ 다람쥐도 있었다.

이 겁쟁이 다람쥐는 용감한 다람쥐들의 경쟁에 끼어들지 못하고 뒷전에 밀려나 있다가 우연히 자신 앞으로 굴러온 도토리를 차지하게 되면 얼른 땅을 파 묻는다. 근처에 있는 다른 용감한 다람쥐에게 들켜 뺏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며칠이나 몇 주가 지난 후에 다람쥐는 자신이 도토리를 묻어둔 장소에 조용히 나타나 다시 땅을 파서 먹이를 먹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동료들과의 먹이경쟁에서 늘 성공해 도토리를 많이 구할 수 있었던 덩치 크고 용감한 다람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급기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 발행한 것인가?

정답은 생도토리의 성분 중 하나인 ‘탄닌’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원래 이 탄닌은 도토리가 다른 종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만든 독으로 인간에게도 해로운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사람에게도 해로운데 하물며 덩치가 매우 작은 다람쥐는 어떨까? 다람쥐가 해독할 수 있는 탄닌은 8밀리그램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도토리 한 개에 포함된 탄닌이 9밀리그램이라고 하니 한 개를 먹어도 치사량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답이 나올 것이다. 용감하고 건강한 다람쥐들은 생도토리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체내에 탄닌이 쌓여 사망하게 되었다. 반면에 동료들과의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어 먹이를 잘 구하지 못했던 다람쥐는 동료들의 눈을 피해 도토리를 땅속에 숨겼고, 얼마간 방치해두는 동안 도토리는 숙성되어서 발효가 되었다. 그 결과 겁쟁이 다람쥐는 탄닌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소심한 다람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도 다람쥐와 마찬가지 아닐까? 강한 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고 겁쟁이일지라도 생존하는 자가 결국은 강한 자라는 것이. 다시 말해 원시시대 우리 조상 중에 변화나 새로움이 좋아 모험을 기꺼이 택한 용감한 사람들은 용감한 다람쥐처럼 거의 다 죽고 말았을 것이다. 독버섯을 먹는다든지 맹수의 동굴에 들어간다든지 해서 말이다. 결국 우리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것은 변화에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선조보다 변화에 조심스럽고 겁이 많은 선조들의 DNA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제 변화관리를 왜 작은 것부터 그리고 단계적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며, 이것이 인간을 지금까지 존재하게 해주는 요인이다. 물론 우리 중 일부분은 여전히 용감하며 기꺼이 변화를 시도할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을 이해한다면 변화관리는 그들의 두려움을 달래주면서 조금씩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에서 변화관리를 시도할 때 너무 큰 행동의 변화를 구성원에게 요구하기보다는 그들의 행동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도형’ 으로 조금씩 확산하는 모델이 궁극적으로는 ‘Winning’ 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일부분의 용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행하고 그 실행결과의 유익성을 보여주면서.

이제 탁월한 것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 탁월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잠시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기?”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발견하였는가? 그 곳에 위대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가 말한 자신의 ‘강점’이 숨어있고, 자신이 꿈꾸는 성장은 ‘강점 에너지’를 통해서만 지속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수민 연구소장/대표 (SM&J PARTNERS)
저서) 강사의 탄생:뇌과학을 활용한 효과적인 강의법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EMBA)
전)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HRD교수실
전) 현대자동차 연구개발교육팀/교육기획팀
sumin@smnjpartners.com